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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놀이란 민간에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놀이로서 각 지방의 생활과 풍속의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런 놀이들이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생겨났는지를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많은 민속학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민속놀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생겨나 오랜 세월을 거쳐 놀이의 형태로 다듬어진 것으로 믿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오월 단오제나 한가위, 설날 때 구경할 수 있는 그네타기나 널뛰기, 자치기, 제기차기, 줄당기기, 연날리기, 윷놀이 등이 있지만 이외에도 아이들과 부녀자, 어른들이 끼리끼리 어울려 노는 놀이와 각 지역마다 특색을 갖춘 놀이까지 합치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이 사라져 버린 민속놀이가 많다. 산업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의 양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에도 이렇게 잊혀진 민속놀이들이 많이 있다. 불과 20~30여년 전만 하더라도 꼬마들이 학교를 갔다 오면 고누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라 했다. 고누놀이는 말밭을 땅에 그려 놓고 두 편으로 나뉘어져 말을 많이 따거나 말길을 막는 것을 다투는 놀이인데 우물고누, 사발고누, 바퀴고누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또 그림자밟기라는 놀이도 유행했었는데 가을철 달 밝은 밤에 동네 아이들이 마당이나 풀밭에 모여 5~10명이 가위 바위 보로 술래 정하여 다시 다른 아이의 그림자를 찾는 놀이였다. 기존의 술래잡기는 직접 숨은 사람을 찾아내고 재빨리 술래자리로 달려가 점을 찍는 것이라면 이 그림자밟기는 그림자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특색이다.

따뜻한 봄날이나 뙤약볕이 내려 쬐는 여름철엔 시원한 그늘 아래서 소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직경 1m 정도의 원을 그려놓고 조그마한 돌이나 사금파리로 말을 만들어 두 손가락을 모아 돌을 튕겨 인접해 있는 구역에 집어넣는 땅 빼앗기 놀이도 즐기던 놀이였다.

반면에 어른들은 아이들과는 달리 조금은 거칠고 시끌법적한 민속놀이를 즐겨 하였다. 옛날엔 집을 지으려면 주추를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야만 했다. 이 때 땅이 무르거나 편편한 곳에서는 지반이 약하여 기둥을 단단히 세울 수가 없는 경우가 있 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큰 돌을 여러 개의 밧줄에 묶어 빙 둘러 서서 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땅을 다졌는데 이것을 지경 닫기라고 한다. 물론 처음엔 노동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세월이 흐르자 어느새 민속놀이가 되어 명절 때면 마을 사람들 사이에 힘자랑하는 놀이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요즘엔 찾아 볼 수 없어 아쉬운 추억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는 일명 농기싸움이라고 불리운 두레싸움이었다.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하천은 산곡천과 덕풍천인데 옛날엔 덕풍천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거의 형성되었다. 지금의 고골이 위치한 상류에서부터 보면 동쪽으로는 상사창동, 하사창동, 교산동, 샘재, 더우개마을 등이 형성되었고 그 맞은 편인 서쪽으로는 항동, 궁안, 버구리, 역말, 장예말 등이 부락을 이루었다.

지금 보이겐 이 좁은 샛강을 사이에 두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의아해 하겠지만 옛날에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무슨 때만 되면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고 하는데 싸움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농사철이 돌아오면 의례 상대 마을사람들과 하나의 놀이로서 치루었던 힘겨루기였던 것이다.

옛날엔 농사철이 되면 제일 먼저 농기와 농약을 앞세운 두레패들이 들판을 헤집고 다녔다. 마치 어촌에서 봄철에 배를 출항하기 전에 고사를 지내고 출정식들 갖는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두레패들이 농악을 울리고 들판을 왔다 갔다 하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드디어 농사철이 다가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냥 왔다 갔다 하기는 너무 심심하여 먼저 맞은 편 마을의 두레패들에게 시비를 건다. 이것을 기배시비라고 하는데 상대편 두레패에게 농기머리를 숙이고 요구하면 상대는 되레 ‘너희가 먼저 절을 하라’고 맞받아 쳤던 것이다.

이렇게 몇 번 입씨름을 하다가 성미가 급한 두레패의 징잽이가 칭을 꽝하고 치면 상대편 농기 끝에 매달린 꿩의 깃털을 뺏으려고 우-하고 달려간다. 한참동안의 실랑이 끝에 마침내 힘이 약한 두레패의 농기가 쓰러지고 깃털이 뽑혀지게 되면 승부가 난 것이다.

이긴 마을 사람들은 기뻐 어쩔 줄을 몰라 농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자기 마을로 행군하는 반면 진편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짚신을 벗어 땅을 치며 통곡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놀이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든다. 먼저 두레싸움에서 진 마을의 아이들이 둑으로 나가 진을 치고 이긴 마을의 아이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함성을 지른다. 가끔 듣기 거북한 욕설도 섞여 있다. 어른들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아이들의 용맹무쌍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긴 마을의 아이들도 삽시간에 둑으로 나와 대진을 펼친다. 이윽고 돌팔매질이 이어진다. 이른바 석전이다. 힘껏 던 지지만 여간해선 건너편 둑의 아이들을 맞히는 경우는 없다. 힘도 딸릴 뿐만 아니라 놀이로서 그저 시늉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힘이 다할 때가지 던지다가 제풀에 지쳐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간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면 휘영청 달 밝은 밤하늘 아래 조용히 흐르는 덕풍천의 물소리만 남는다.

이 얘기를 하고나자 한 아이가 ‘이것은 민속놀이가 아니라 싸움이 아닌가요?’하며 의아해 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풍속을 오늘의 잣대로만 해석하여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놀이문화가 다양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발달된 문명의 시대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딱히 스트레스를 풀만한 대상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진짜 싸움이었다면 다치거나 피가 나는 등 위험 하였겠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위험은 없었다. 사람들은 단지 이러한 놀이를 통하여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의 단결심을 확인하고 서로 서로의 정을 나누었던 것이다. 또 다음 날이면 이웃마을 사람들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묻곤 하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만이 가진 독특한 놀이문화의 한 모습이요, 특히 우리 지역에는 이 두레싸움놀이로 사람들끼리 좋은 경쟁심을 가지며 열심히 일하고 삶을 살아갔던 것이다.

이 외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지금의 신장동에서 창우동으로 가는 옛길에는 마차가 다녔다. 뽀얗게 먼지나는 흙길을 마차로 달리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가끔씩 마부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약 3km의 거리를 누가 먼저 빨리 달리나 시합을 즐겼는데 이것이 시초가 되어 명절 때엔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차달리기대회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이 놀이 또한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민속놀이는 우리의 고유한 문화이다. 비록 지금은 많은 민속놀이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없지만 이것을 찾아 기록하고 다시 되새기는 일은 오늘에 사는 우리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삶의 지표를 찾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놀이의 형태와 종류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조상들이 즐겼던 민속놀이를 배우는 일은 우리의 뿌리는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하남시가 나서서 우리의 잊혀진 민속놀이를 복웋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