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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제 계급이 있다. 이른바 명문 귀족계급을 지칭하는 말로 물질적인 상류층이라기보다는 국민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소수의 명문가이자 정신적 지도자 계층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특별히 이 계층의 사람들을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특별대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가에 공헌도가 높거나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들에게 공작이나, 백작의 칭호를 내리고 국가에서 일정한 재산과 생계비를 지급한다. 대다수 국민들은 그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렇게 그들을 특별대우를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 모두들 자신의 이익이나 안위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 로자 이기 때문이다.

포틀랜드 전쟁당시 영국왕실의 에드워드 왕자는 당시 전투기조종사였다.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영국은 아르헨티나의 미사일 공격에 곤혹을 치루고 있었는데 논란 끝에 미사일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길은 단 하나, 미사일이 날아오는 상공에 미리 나가 쇠가루를 뿌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 에드워드왕자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그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그 위험한 일을 왕자의 신분으로 자처하고 나선 에드워드왕자에 대해 전 영국민들은 노심초사했다. 결국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한하자 국민들은 영국왕실을 향해 꽃을 던지며 진심어린 사랑과 존경을 표했다고 한다.

참으로 부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영국왕실과 영국의 귀족층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국가가 위급할 때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길 뿐 아니라 국민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봉사자로서 전 국민의 자랑거리라는 사실이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돌아보면 우리나라에도 나라를 지켜왔고 역사를 창조하였던 고귀한 분들이 각 계층에 실재하였다. 독립운동가 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 문화, 종교, 정, 재계 등에서 소리 없이 봉사를 실천하신 분들이다. 이름 없이 값없이 피 흘리신 영령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이 강토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감사할줄 몰랐고 존경심도 가지지 못했으며 세월 이 지나자 아예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에 연재되는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는 망각 속에 빠져있는 우리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지를 충분히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 난에 소개되는 명문가와 사람들의 얘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무엇이 애구이고 사랑인지를 그들은 몸소 실천해 보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리의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실상은 어떤 모습인가.

국무총리 인준을 위한 국회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알 수 있었는가. 사회지도층이라고 행세하던 사람들의 국가관이 어떤 것이며 재산을 어떻게 모았는지를 우리는 적나라하게 지켜보았다. 명색이 대학총장이요, 언론사대표인 그 두 사람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지도층 인사들의 속내를 훔쳐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작금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김모씨라는 사기, 강간 전과자를 내세워 테이프를 조작하고 사건의 본말을 전도시키려는 저질, 흉악한 세력과 이를 옹호하기위해 기를 쓰는 민주당은 평가할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회창씨가 과연 한나라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 운운하지만 솔직히 대한민국 국민치고 자식 군대 보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병역의무는 국민으로서의 도리이기에 당연한 통과절차로 여기는 것이다. 평범한 민초들의 생각도 이럴진대 지도층인사들은 더욱 솔선수범해야 마땅한 일이다. 설사 아들의 체중이 미달되어 군 입대 면제 대상이라고 쳐도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억지로 자식 체중을 불려서라도 군대에 보낼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지도자로 선출되고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안타깝고 의혹의 눈길을 접을 수 없는 것이다.

왜 우리에겐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솔선수범하는 지도자들이 없는가. 자식을 군에 보낸 아버지의 한사람으로서 아픈 심정을 대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