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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지만 간혹 술자리에 동석하는 일이 있다. 남들은 ‘술 한 잔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하느냐’ 고 반문하지만 천성적으로 대화하기를 즐겨하니 내가 술을 안 먹고 남들이 술을 먹고 하는 문제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사람 됨됨이는 잡기를 같이 하면 쉽게 알 수 있다고들 하지만 술을 나눌 때도 서로의 성격이나 인품을 가늠할 수 있다. 외모는 거울로 보고 마음은 술로 떠보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 술에 취하면 평소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것들을 거침없이 쏟아 놓기 마련이다. 끈으로 묶어 놓았던 보자기가 술에 의해 슬그머니 풀리기 때문이다.

술에 취하면 허풍과 욕심이 드러나고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위선까지도 부끄러움을 넘어 기어 나온다. 물론 알코올의 영향을 받은 상태의 언행이므로 못들은 것으로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평소와 전혀 딴판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곧 평상시의 생활이나 사고와 결코 무관치 않은 것인데 멀쩡한 모습일 때의 그 사람 속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술기운으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일방적인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주장이 논리에 어긋나고 내용이 충실치 못한 것이라 해도 술자리에서만은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 술에 취하면 은연중 자신의 식견이나 인생철학에 강한 믿음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이럴 때, 술좌석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최악의 평가를 받게 된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자신의 친구까지 모두 ‘개자식’ 의 수준으로 비하되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장 논리적인 사고와 완벽하 지성의 인물로 포장시키며 인생의 정도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우쭐대는 것이다.

평소엔 그처럼 착하고 겸손하고 능력 있고 곧은 사람이 어째서 술에 취하면 그렇게 쉽게 허물어져 자신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이고야 마는지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 마다 차라리 보지 않고 듣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취중에 본심을 보인다는 말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닐성 싶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을 때면 참으로 당혹스럽고 민망하기 짝이 없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의 장단점이 도마 위에 오르고 책임질 수도 없는 일에 대해 큰소리를 떵떵 쳐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술자리에서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 다음 날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하면 할 말을 잃어버린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사람의 입에서 술자리에 있었던 일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 하는 태연한 말을 들을 때이다.

그렇다고 술에 취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과시나 도취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내 주변에는 술 매너 좋기로 소문난 몇몇의 지인들이 있다. 그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풍월이 오가고 즐거운 담소와 웃음이 함께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겸양지덕을 가졌고 이해관계 없이 남을 중상모락 하는 법이 없다. 자기절제에 익숙해져있는 사람들이다. 그릇이 크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이들과는 밤새도록 술자리로 이어질 것이고 나는 어느 시점에 그 자리를 슬그머니 빠져나와야 될지를 미리 생각중이다. 누구누구가 올 테고 누구누구는 또 이런 말을 할 것이고 종래에는 어떤 분위기가 될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