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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기술의 발달로 뱃속에 든 태아를 미리 사진으로 볼 수 있어 참 좋다. 그럴 때 생명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먼저 몸통의 형태가 대충 이루어지면 손이 생겨나고 그 다음에 발의 모양이 갖추어 진다. 그리고 뱃속에서 나올 때는 제일 먼저 머리가 보이는 것이다.

작가 원성종씨는 ‘손이 먼저 생기는 것은 세상에 나가서 땀 흘려 일해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라는 뜻이고 발이 두 번째로 생기는 것은 생계를 해결한 후 지구 위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많은 활동을 하라는 뜻이다.’ 라고 풀이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머리가 먼저 엄마 자궁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머리를 써서 살아야 되는 운명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

자식이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의 가슴앓이는 시작된다. 가슴이 졸여 숨이 막힐 때가 어디 한 두 번인가. 아이를 키우다보면 수차례 병치레를 겪게 된다. 아직 말도 못하고 울음과 칭얼댐으로 겨우 살아있다는 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좌불안석이다. 어쩌다 많이 아파 링거라도 꼽고 있는 날이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아이 옆에서 꼼짝할 수 없는 것이 부모다. ‘내가 대신 아파 누웠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게 아팠던 아이가 어느새 열이 내리고 잠에서 깨어나면서 미소라도 지을라 싶으면 부모의 마음은 새봄에 눈 녹듯이 녹아서 찌르르 하고 가슴이 울린다. 부모의 몫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혹 다친 상처가 흉으로 남지는 않을까 조바심으로 지낸다. 여자애의 얼굴에 상처라도 생기면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런 자식이 어느새 잡초 크듯 키가 자라고 덩치가 커지고 머리가 굵어진다. 예나 저나 부모의 눈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아이이건만 갑자기 자식은 부모 앞에 서서 ‘다 컸으니 이제 간섭하지 말라’ 고 어릉거린다. 친구들이 생기고 노는 것에 취해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지며 마음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대학이라도 들어가면 부모의 말에 대항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그것은 퀘퀘묵은 생각 이예요’ ‘우리 세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라는 말로 부모를 저만치 밀쳐놓는다.

갑자기 부모 자식간에 장벽이 가로 놓이는 것이다. ‘품 안에 자식’ 이라고 하더니 품을 떠난 자식들은 더 이상 부모의 그늘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것이다.

이쯤 되면 부모는 자식을 놓아주어야 한다. 사자도 제 새끼가 다 크면 혼자 사냥하도록 내버려둔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요즘의 부모들은 너무 자식을 품안에 가두어놓고 내놓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마마보이가 있고 자립하지 못하고 다 커서도 응석받이로 남아 있는 자식들이 생겨난다.

자식을 가르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도 하나의 인격체임으로 바른 생애를 가지도록 인도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부모에게 일차적으로 있다. 자식이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해서 옳고 그름을 분별시키지 않는다면 그 부모는 자식을 파멸 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훌륭한 자식으로 키우려 한다면 고통과 절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야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인생을 안다’고 했고 ‘자갈 발길을 걸어보아야 아스팔트길이 얼마나 편한 길인지를 알게 된다’ 고 했다. 어찌, 추웠던 겨울을 겪지 않은 나무가 봄볕의 고마움을 알 수 있을까?

사랑은 맹목적이어선 안 된다. 부모의 사랑이 내리사랑이라고 하며 무조건 사랑만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마음이야 쓰라리겠지만 자식 앞에서 어느 때는 냉정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반면에 끊임없는 대화로 자식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대화를 잃어버리고 사는 부모자식간에는 절대로 향기 나는 꽃이 필수 없다. 친구 간에 대화가 끊어지면 우정에 금이 가듯 부모자식간에 대화가 끊어지면 가정의 평화는 깨지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서대차이가 난다는 구실로 나 또한 자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로서의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귀와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식들의 말을 듣고 또 듣도록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