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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가까워지면 며칠 전부터 아내는 분주해진다.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제사상 차리기가 장난이 아니다. 많게는 2백여 명에 달하는 대가족의 음식을 만들기는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저민다. 그래도 시집와서 지금까지 30년 동안을 군말 없이 집안의 대소사를 치러내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한번은 아내가 파업을 벌인 적이 있었다. 너무 힘들고 마음까지 상한다는 이유였다. 하기야 내가 보아도 아내의 불만은 타당했다. 아내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 다른 사람들은 제사가 끝나면 밥상머리에 앉기가 바쁜 것이었다.

아내가 잠시 파업하자 모든 일이 스톱되었다. 꼭 그렇게 해야만 아내의 처지를 알게 되었으니 내가 못난 남편임에 틀림없다.

수고 했다고 다리 한번 주물러 주지 못한 나였다. 그놈의 체면이 무엇이 길래 남들 앞에서 위로의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한 나였다.

제사상에 차려지는 것과 대가족이 먹어치우는 음식상에 놓여지는 그릇 수만 해도 족히 몇 백 그릇은 될 성싶었다. 음식 내오고 오는 손님마다 밥상 차리고 떠날 땐 음식 보따리나 선물 하나씩 집어주고 나면 하루 종일 아내는 설거지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릇이 씻기면 다시 제자리로 집어넣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아침에 자리에 일어난 이후 끝날 때까지 방바닥에 엉덩이 한번 붙이지 못한다. 그러니 허리가 아프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명절이 다가오면 아내는 까닭 없이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몸살기가 돈다고 한다. 이른바 흔히 말하는 여자들의 명절증후군이다.

특히 아내의 경우는 극심한 편이다. 아내는 명절에 대한 공포심마저 가지고 있다. 또 동서들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으로 정신과 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형님은 좀 쉬세요.” 하고 제수씨들이 팔을 좀 걷어 부치면 될 것을 왜 그리 눈치들이 없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명절 제사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싶다. 조상의 은덕을 가리는 것은 후손으로서 당연지사이지만 그것이 한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분명 잘못된 전통이 아닐 수 없다. 제사는 조상에 대한 감사의 표시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나를 있게 해준 부모님과 조상에 대한 기억을 살리고 그 은덕으로 잘 살고 있다고 고하는 의례이다. 또 명절은 제사와 함께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제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차려진 음식 먹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바쁘다. 집안을 생각하고 일가친척의 안부를 다지고 형제의 의와 가족의 친밀함이 있어야 할 자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저 명절이므로 당연히 모여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명절을 지내고 제사를 모실 뿐이다. 그렇다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차릴 이유가 없다.

성당에 나간 뒤부터 제사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선 아내를 명절스트레스로부터 구출하는 일이 급선무다. 산사람이 무슨 죄가 있어 혼자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제사를 하나의 세레머니로 격상시키는 일을 내가 먼저 나서서 실행해야 되겠다. 그리고 후손들에게는 그 자리에서 조상의 일생을 돌아보고 본받을 점과 버릴 점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집안의 전통과 가훈을 전수해 주는 의식으로 만들어야 하겠다. 음식도 간단히 준비하고 오히려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그런 명절문화를 우리 집부터 만들어야 하겠다.

이것이 아내를 해방시키는 지름길임을 믿으며 아내에 대한 나의 작은 보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