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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윈과 러시아의 가가린은 똑같이 우주비행을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한 말은 정 반대였다. 가가린은 우주여행을 해보아도 신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했고 어윈은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에 들어가 보아도 하나님이 계셨고 대서양에도 하나님이 계셨고 달나라에 가보아도 하나님이 계셧꼬 지금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했다. 우리의 역사에도 예가 있다. 임진왜란 전에 일본에 다녀 온 사신들이 정 반대의 보고를 임금에게 올리지 않았는가.

한 사람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요인으로 사회학자들은 환경과 교육을 들고 있다. 명절 때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시골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도시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무척 다름을 알 수 있다. 성장하는 환경과 교육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각자의 직업이나 위치에 따라 실재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 각자의 가치관이 어느새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가치관은 또 각자의 렌즈에 의해 외부로 표출되어진다. 이것을 사상적 외도라고 부른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모두 이러한 가치관과 렌즈를 가지고 있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들이 과연 합리적인 것이며 옳은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 고민이 도사리고 있다. 나는 과연 어떤가. 나의 가치관과 렌즈는 정말로 올바른 것일까?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매사 나를 검증하는 일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느냐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나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자신에 대한 검증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책이다. 책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경험칙을 접할 수 있고 곧 그것은 나와의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은 진리이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일이다. 일견 상대의 의견이나 생각들이 합당치 않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가치관을 통하여 나의 것을 비교하고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하여 무척 고집스럽다. 그런데 근거없거나 정확한 사태의 이해 없이 고집을 부린다면 그것은 좀 심각한 것이다. 자신의 모순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 그런 생각이 든다. 그저 무작정 현재의 입장에 서서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펼치는 사람을 만날 때엔 답답한 마음이 든다. 특히 명색이 공인이라고 지칭되는 사람이 그런 억지를 부릴 때는 부화가 치미는 것이 사실이다.

경기도의원시절, 나를 가장 슬프게 한 사건이 있었다. 공영사의 이전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공영사는 레미콘의 원활한 수급을 위한 정부정책에 따라 지난 80년대 초반에 이곳 하남시 풍산동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레미콘의 타설시간은 약 90여분으로 한정되어 있고 이에따라 공영사는 서울 동북부권의 건설현장에 신속한 레미콘의 공급을 위해 위치적으로 적합한 하남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전 할 때에 세간에는 전두환정권의 초법적인 결정과 특혜 등의 소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민들에게는 그린벨트를 지키라고 하면서 그린벨트지역에 공해산업을 설치하는 정부의 처사가 하남시민들의 입장에서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국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러한 여러 억측과 소문에도 불구하고 레미콘공장의 설치문제는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뒤였다. 93년 공영사 바로 뒤편에 서해아파트가 들어섰다. 원칙적으로는 그곳에 아파트허가가 나서는 안 될 지역이었다. 더 좋은 자연지역이 있음에도 굳이 공장 뒤편에 아파트를 건설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공영사의 먼지와 분진 소음 때문에 생활을 할 수 없다며 연일 데모를 하였다. 그리고 하남시에 공장을 당장 이전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5백여 공장가족들은 가족들대로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고 어르렁거렸다.

공영사문제는 내 지역구의 문제이기도 했다. 나는 이 문제를 정식으로 경기도의회에 상정하고 국가적인 관점에서이 문제를 풀어가고자 했다. 제 아무리 지역의 문제이긴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 지역의 일이 결정되어야 함은 당연한 처사이다. 그러나 하남시의회의 입장은 주민들 우선 편이었다. 국가의 정책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주민들이 요구하므로 공장을 이전해야 한다는 억지를 부렸다. 심지어 시의원들은 경기도의회에 까지 몰려와 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동료 의원들은 어처구니없어했다. 같은 지역의 문제를 놓고 시의원과 도의원이 대립하는 모습이 동료의원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만무했다. 그것보다 문제는 시의원들의 주장이 억지라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욕을 억어 먹지 않겠다고 무조건 주민들 편에 서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진정한 일꾼의 자세가 아님에도 그들은 인기에 영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초지일관하였다. 정치인은 항상 눈앞의 영리보다는 긴 역사의 관점에서 옳은 일을 함에 주저치 않아야 한다는 나의 소신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아도 그 때의 내 소신과 행동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당시 시의원이자 지역 후배인 한 사람이 뒤늦게 내게 찾아와 이렇게 고백했다. “선배님이 옳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자신의 가치관이 시류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면 한번쯤 자신에 대한 검증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후배는 묵묵히 나의 말을 경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