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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고향을 사랑하고 지키는 이는 많지만 고향사람들로부터 인정 받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예수님도 고향사람들로부터는 구세주로 영접 받지 못했으며 공자도 타국에서 오히려 그 진가를 발휘하지 않았는가.

그럴만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 너무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지간도 연애할 때엔 좋은 점만 보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단점을 꼬집게 되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싸움이 되고 끝내 이혼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모두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 상대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거나 외부에 투영된 허상의 꼬투리를 내가 잡고 있다는 일종의 자만심이 상대의 인격을 훼손하여 발생하는 사단인 것이다.

존경과 신뢰의 이면에는 일단의 신비감이 포장되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산의 경치도 멀리서 보았을 때 아름다운 것이지 직접 산에 오르면 온갖 더러운 물질이 얼마나 많이 널부러져 있는가.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향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좋게 봐 주는 것보다 어떤 의도가 있다든지 무슨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으로 비하하고 헐뜯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특히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심하다. 누차 밝혔듯이 나는 정치의 일에 대해서 만큼은 정도를 걸어 왔다고 자부한다. 무엇이 정도인가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식적인 측면에서 그 진위를 판가름 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적 야합과 밀실거래는 철저히 배척했다. 옳지 않은 의도를 가지고 내게 접근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는 단호히 그러한 제의를 거부했다. 정당이 출범 때와는 달리 정도를 걷지 않고 현실타개를 위해 편법을 쓰거나 정당하지 못한 행위를 할 때에는 미련 없이 탈당을 했다. 깊은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박영길은 툭하면 탈당한다고 비판하지만 실상 알고 보면 우리의 정당과 정당을 운영하는 정치인들의 도덕성과 자질들이 너무 형편없음을 알게 된다.

지구당의 운영에도 나는 지금까지 깊이 개입해 왔다. 지난 95년 6월 민주자유당 시절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정영훈 위원장의 주관하에 하남시장후보 경선이 열렸다. 경선에서는 이영근, 구자관, 박덕진 그리고 나까지 4명의 후보가 경선에 참여했다.

나는 처음부터 정위원장에게 경선 전에 후보자들의 신원과 가격검사를 철저히 할 것을 요구했다. 검증 없는 경선은 당원과 대의원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나의 소신을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 기업이 상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철저한 품질검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품질에 하자가 있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사기꾼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선위원장인 유모씨에게 나는 경선 참여자들의 전과기록조회, 학력변조 여부, 재산관계, 주요경력의 사실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문제가 있는 후보자에겐 해명을 요구하거나 후보자격을 박탈하는 등의 검증작업을 실시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 의원 등은 나의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선을 감행하고야 말았다. 나는 후보 검증 없는 불공정 경선 자체를 보이콧했고 결과는 우려했던 것처럼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영근씨가 경선에서 1위를 하였으나 상대 후보 측에서 학력 허위기재를 문제 삼게 되자 정위원장은 부랴부랴 2위를 한 구자관씨로 하남시장후보를 교체하게 된 것이다. 사전에 철저한 검증과정만 있었다면 이렇게 시민을 우롱하는 일이 발생치 않았을 터인데 대강대강 일을 처리하다보니 우스운 꼴만 남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참 이상하게도 박영길이 깽판쳤다고 했다. 옳은 일을 했는데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며 뭐 그렇게 따지고 하느냐며 나를 공박하는 것이었다. 그 때만큼 고향사람들이 미운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입으로는 정의사회구현을 부르짖으면서도 사람들은 그냥 대충 살아가려고 한다. 누가 잘못이고 누가 옳은 것인지를 때로는 그 시시비비를 가려 주어야 함에도 사람들은 옳은 판단을 내리기를 주저한다. 귀찮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주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5월에 있었던 새천년민주당 하남시장후보경선의 경우도 비슷한 예이다. 손영채 전 하남시장은 8.8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할 목적으로 임기 두 달 전에 시장 직을 사퇴하고 정영훈씨에 이어 지구당위원장 직무대행의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부위원장 자격으로 직무대행의 선출을 위한 당무회의가 당헌당규에 위배대는 사실을 발견하고 손씨의 직무대행선 출은 원인무효임을 주장하고 법우에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냥 대충해서 일을 꾸민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결정된 것이므로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어차피 손씨로 뽑아줄 비엔 그 과정이 뭐 그리 중요하느냐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고자 한 것이다. 다음에 이 비화를 상세히 소개하겠지만 원칙이 무너짐에도 그것의 문제를 제기치 않는다면 분명 우리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더 독한 경우는 진심과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매몰찬 태도를 접할 때이다.

하남시를 위해 나의 재산을 헌납할 때에도 사람들은 내가 무슨 목적이 있어 땅을 내 놓았다고 수군거렸다. 나도 인간인지라 이런 경우엔 부화가 치민다.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하고 아무하고도 상면하고 싶지 않게 된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두 고향이라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일정부분 이미 알고 시작하고 각오한 일이므로 모두 내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가끔 역사학자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은 현실감각은 떨어지지만 언제나 긴 역사의 거울을 보고 자신이 그 거울에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를 생각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에 대하여 대부분 철저한 검증을 하고 산다. 이런 점에서 나 또한 현재의 평가에 연연하기보다는 긴 하남의 역사안에서 진정한 평가를 받고 싶다. 비록 오늘도 나의 고향사람들은 박영길이라는 인물을 도마 위에서 올려 놓고 각자의 렌즈로 바라보고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