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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는 프랑스의 작가이며 철학교수를 지낸 사람이다. 그는 에세이집 <섬>에서 파리에 살고 싶은 이유를 ‘무언가 감추고 싶은 사람들에게 딱 알맞은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낯선 도시에서 비밀스러운 삶을 살고 싶은게 꿈이라고 까지 했다.

그 대목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 또한 이 하남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비록 술 한 잔 입에 대지 못하지만 이 방인들과의 소주자리에 무턱대고 끼어 앉아 그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그르니에처럼 아는 얘기가 나와도 모르는 척하고 정치이야기로 핏대를 올려도 그저 빙그레 웃고 싶은 그럼 삶이면 얼마나 좋은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모두 생각일 뿐, 현실의 몸을 내 고향으로부터 도피시킬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옹 박경응 선조로부터 나까지 우리의 가문이 이곳 하남 땅에 뿌리를 내린 지가 5백년 가까운 세월이다. 그 천륜의 대를 이어 받은 후손으로서 그 분들이 물려주신 땅과 고향산천을 지키는 일은 적어도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내게 있어서도 운명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유교적 관습 운운하기 이전에 뿌리 깊은 가문의 영예를 내 손으로 더럽힐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떠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다.

고향을 위해 헌신하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어차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면 고향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된 본분일 것이며 배운 자의 자그마한 소임일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두 눈 감고 살라치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나 또한 살아갈 수 있을 테다.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 재산을 꽊 움켜지고 호위 호식하는 엽전 파들이 있다.
고향이 어찌되든 나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아무 소리하지 않으며 이웃이 어떤 모습으로 살든 관심 끊고 살아가는 고향지기들이 분명 있다. 그들로부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부금이나 재산 헌납을 받아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나라도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 고향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두 번째 이유랄 수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법학도 출신으로서 나는 정의사회 구현을 꿈꾼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이 나의 기초적 소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 고향의 문제에 대해선 그 강도가 더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나를 두고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사람이라고 입방아를 찧는다. 심지어 나의 아내와 자식들마저도 나의 정치적 행보에 대하여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6.13 지방선거를 한 달도 채 앞두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하남시장선거에 나가야 되겠다고 말했다. 도의원선거 두 번에 국회의원선거, 시장선거 등 이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의 출마이기에 건강이 안 좋은 아내도 진저리를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2천만원을 꺼내 놓으며 내가 가진 것이라곤 이것 밖에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이것 이상 못하니 당신 뜻대로 하라며 뒤돌아 앉았다. 또 선거에 나선다고 하니 얼마나 미웠을까. 그럼에도 모른 척 할 수는 없어 자신이 한두 푼 모은 돈을 보란 듯이 내어준 아내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부부란 그런 것이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울컥 눈물이 솟아 나왔다. 나는 주저 없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어 아내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런데 아내로부터 큰 변화가 일어났다. 첫 합동연설회가 끝난 뒤였다. 평소에 관심 없어 하던 아내가 몰래 그 연설회장을 찾아 나의 절규에 가까운 연설을 들은 것이다. 밤늦은 시각, 아내는 내 손을 꼭 붙잡고선 이제야 당신이 왜 그토록 선거에 출마하려는지 알게 되었다며 용기를 내라는 것이 아닌가! 아, 사내란 결국 단 한 사람의 여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평생에 처음으로 나는 아내로부터 인정받은 남편이 된 것이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싶었다.

물론 예상대로 나는 낙선했다. 그래도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2천 여 명이나 된다는 사실 하나로 위안 삼을 일이었다.

선거가 끝난 후의 시간들은 마치 태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함을 떠올리게 한다. 남들은 내가 비통해 하고 허탈할 것으로 짐작하고 위로의 말은 인사치레로 건네지만 솔직히 난 좀 다르다. 들판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난 뒤의 휴식을 갖는 마음이랄까 그런 정도의 편안함에 빠져든다. 오랜만에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것도 이 때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뒤적이는 것도 이 때다. 이 때쯤이면 한동안 사람들의 내왕도 끊어진다. 자신들의 생각으로 나의 입장을 고려한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고마운 일이지만 홀가분한 나의 심정을 사람들이 알 리가 없다. 하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 무엇으로서는 잘못 되가는 것을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것도 일종의 죄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민의 알권리와 문제점들을 시원하게 충족 시켜주기 위하여 할말을 했다는 자긍심이라 열심히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미련이다 후회보다 후련한 느낌이 더 앞선다.

이런 경우도 고향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일 일 테다. 그러나 누구라도 자신의 고향을 생각하고 고향에 대한 자신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나의 입장과 마음, 생각들을 일부분이나마 이해하리라 믿는다.

이 글은 우선 고향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담아낸 작은 그릇이다. 그리고 훌륭하진 않지만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수상록이다. 또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나의 헌신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에게 남기는 아버지로서의 잠언이요, 충고이다.

앞서간 이는 눈밭에 어지러운 발자국을 남기지 말라는 백범 김구 선생의 어록처럼 나 또한 자식들에게 그런 흔적이 되고 싶은 것이다. 욕심일까?

이 글이 나오도록 도와준 이들이 많다. 일일이 거론하기에 지면이 넘치므로 뭉뚱그려 한번에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죽는 날 까지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